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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인터뷰   트랙백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5-02-13 14:47

[이정민이 만난 사람] 물러나는 구원투수문희상 새정치련 비대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의 의원회관 454호실. 곳곳엔 손수 쓴 붓글씨가 걸려 있었다. 국회 일정 틈틈이 서도(書道)를 즐긴다는 그는 책상 위에 화선지를 깔고 한 자씩 써 내려갔다. 무신불립(無信不立)- .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는 공자의 말에서 따온 고사성어로 문 위원장이 즐겨 쓰는 글귀이기도 하다.

 8일 새 대표가 선출되면 그의 구원투수임무도 끝이 난다. 지난해 922일부터 넉 달 넘게 당을 이끌어온 그는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쓸 수 있는 방법은 모조리 써서 우리 입에서 다시는 친노, 비노 이 지긋지긋한 말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뢰 회복이 하루아침에 도깨비방망이처럼 되는 게 아니다. 왕도가 없다누가 당 대표가 되든 자기 사람은 한 명도 주요 당직에 임명하지 말고 거꾸로 저쪽에서 적극적으로 뛴 사람을 사무총장이든 대변인이든 시키라고 권고하겠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 4일 오후 두 시간가량 진행됐다.

 - 비대위원장을 마치는 소회를 듣고 싶다.

 사고 없이 무탈하게 여기까지 왔다는 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비대위원장이 될 때 당 지지도가 13%였는데 최근 30%에 육박(29.7%)하는 걸로 나온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 문 위원장의 리더십 덕분인가.

 우선 국민과 당원이 제1야당이 이렇게까지 떨어져서야 되겠는가, 더 두고 볼 수 없다는 절절함과 걱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둘째는 정부가 시원찮게 하는 데 대한 반사이익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또 우리 나름대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있을 것이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후 당내 어떤 회의에서건 친노·비노가 안 싸웠다. 국회는 밤낮 싸움만 하는 데라는 인식을 불식시켰다. (지난해) 9월 국회 등원, 세월호 협상 마무리, 새해 예산안 법정 시한 통과 등 작지만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신뢰가 생긴 것 같다.”

 - 전당대회는 흥행에 실패, 국민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평가다.

 흥행이 안 됐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다. 전당대회가 꼭 각광받아야 하나.”

 - 막판으로 가면서 저질·막말 대결의 진흙탕 싸움이 되고 있다.

 내가 그것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순 없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고 고질이다. 나도 한탄스럽다.”

 - 선거 후유증을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우려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러면서 가장 낙관하는 사람 중 하나다. 60년 야당사에서 아무리 싸움을 치열하게 해도 끝마무리는 깨끗이 승복했다. 한 번도 불복하고 따로 나가 당을 만든 적이 없다.”

 - 정동영 전 의원이 이미 탈당했다. 특정 후보가 대표에 당선되면 탈당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온다.

 우리 당에서 따로 나가 당을 만들겠다는 논의를 하는 걸 무슨 재주로 막겠나. 하지만 탈당은 얘기가 다르다. (정 전 의원이) 탈당계를 냈던데 무한히 섭섭하다. 우리 당이 잘나갈 때면 괜찮다. 당이 물에 빠질 위기에 있는데 당을 저버리면 세월호 참사 때 빨리 뛰어내린 선장하고 뭐가 다른가. 젖 먹은 힘까지 합치자며 죽기 살기로 하고 있는데 거기서 나가 무슨 득을 보면 얼마나 보겠다고. 그분은 대통령 후보를 했기 때문에 우리 당에 엄청난 자산을 남겨줬지만 부채도 있다. 그분을 당선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희생됐나. 또 노인 폄하 발언 때문에 얼마나 시달렸나.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우리는 일관되게 중도개혁 노선을 취해왔는데 여기서 더 좌클릭하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 무슨 깃발을 들어야 그분들 속이 시원하겠나.”

 - 당이 왜 이 지경이 됐다고 보나.

 친노 계파 패권주의, 계파 이기주의 때문이다. 자기네만 독점하고 전횡하고 다 해먹는 거다. 딴 건 배척하고, 누구는 나가라고 하는 패권주의는 우리의 공적이다. 지난 총선 때 자기네 계파끼리 다 해먹었다. 이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충분하게 정치적으로 거세당했다. 임기를 다 채운 사람이 없다. 한명숙·이해찬 의원도 (대표를) 그만뒀고 문재인 의원도 (최고위원직을) 그만뒀다. 그런데 국회의원직까지 내놔라, 국회의원 나오면 안 된다는 건 부관참시다.”

 - 문 위원장도 친노 아닌가.

 나를 친노라고도 하고 비노라고도 하고 원조 친노라고도 한다. 그게 내 특성이다. 나는 특정 계파라고 할 수 없다. 김대중파라고 할 수도 있고, 노무현파라고 할 수도 있다. 난 특정 계파라고 해 편견을 갖는 걸 제일 싫어한다.”

 문 위원장은 대선 패배 직후인 2012년 말 비대위원장으로 당을 이끈 데 이어 19개월여 만인 지난해 9월 두 번째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만장일치 추대였다. 앞서 열린우리당 시절이던 2005년엔 당 의장을 지냈다. 1980서울의 봄때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만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DJ 정부 때 청와대 정무수석을, 노무현 정부에선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아 국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18대 국회 땐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 위기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맡게 된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두려워하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치매에 걸리는 거고 다른 하나는 편견에 사로잡히는 거다. 나이 들어 노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노랗다고 하면 어떡하나 하는 게 두렵다. 난 자유롭고 싶다. 그런 맘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니까 공정성이 유지될 거라고 판단한 것 같다. 극단적인 양쪽 사람들에게도 자기들한테 모질게 하지 않을 거란 관심과 신뢰가 있지 않았을까.”

 - 5선의 중진이다. ‘문희상 정치를 스스로 평가한다면.

 “19대 총선에 나올 땐 사실 어느 정도 정치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겪으면서 또 새삼스러워지는 게 있다. 내가 원했던 세상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했던 세상과 같다.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한 세상, DJ가 한 이 말에 꽂혀 정치를 시작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 정의는 다른 말로 바꾸면 평등이고 경제민주화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자는 거다. 그런데 가진 자와 아닌 자의 차이가 너무 심해졌고 결과적으로 정의가 더 절실해졌다. 통일의 꿈이 무지개처럼 영롱한 세상. 이 세 가지가 김대중 사상의 요체다. 통일은 새누리 정권 7년간 막장까지 갔다. 6·25전쟁 이래 최악이다. 이게 말이 되나. 우리는 10년 동안 하느라고 했다. 그런데 뭐가 남았는가. 엉터리 같은 것만 남은 거야. 노무현이 그렸던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가 존중되고 인정받는 세상인데 이게 제대로 됐는가. 보수가 지키자는 거면 진보는 세상을 바꾸자는 건데 지금 바꿔졌는가.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생각하니까 너무나 답답하다.”

 이때 갑자기 문 위원장의 목소리가 출렁였다. 코끝이 불그레해지더니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는 울먹이며 말을 이어갔다.

 세상 마치고 (저승에) 가서 무슨 낯으로 볼지 모르겠어. 김대중·노무현 만나서 뭐라고 할지 모르겠어 정말. 나는 너무너무 능력이 없고 너무너무 열정은 식어가고 너무너무 답답해. 내 솔직한 심정이야 진짜. 이걸 어떡하면 좋으냐고. 지금도 고뇌하고 있어. 다 버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나고 싶어. 이게 정말 엉터리야, 말이 안 돼요.”

 절규하듯 토해내던 말이 끊기고 주위가 고요해졌다. 그는 손수건으로 눈자위를 훔치며 혼잣말처럼 내가 몸이 약해져서 그래. 아이고하더니 과일 접시에 놓여 있던 배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 내년 총선에 출마하나.

 이런 식으로 가면 어떡하든지 난 꼭 나와요. 기본이 안 돼 있는 이런 세상을 두고 나만 살길로 가면 비겁한 거지. 죽더라도 전장에서 싸우다 죽어야지. 그렇다고 대통령이나 당권에 나올 건가. 그런 건 나랑 안 맞아요.”

 - 그럼 뭘 할 건가.

 당내에 연수원 교수 제도를 만들어 전국을 다니면서 교육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 은퇴하고 에너지는 넘치는데 할 일은 없는 사람들 한 100명한테 연수원 교수를 시켜 자유민주주의 기본이 뭔가, 시장경제를 왜 지켜야 하는가, 왜 자유가 소중한가 하는 것부터 가르치자는 거다.”

 - 정치하면서 제일 아쉬웠던 일은 뭔가.

 정무수석 때 민주대연합을 추진하다 좌절된 게 가장 후회된다.”

 DJ가 이끄는 동교동계 중심의 호남과 상도동계를 이끌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부산·경남(PK) 세력을 합쳐 정치판을 새로 짜자는 게 민주대연합 구상이다. 그러나 김중권 당시 비서실장을 주축으로 한 대구·경북(TK) 세력의 동진정책구상과 충돌, 좌절됐다. 이어지는 문 위원장의 회고.

 난 그물로 잡자고 했지만 저쪽은 낚시를 시작했다. 국회의원 28명을 입당시켰다. 민주대연합은 명분도 있고 TKPK를 가를 수 있는 구상이어서 상당히 진전됐지만 반대에 부닥쳐 결국 내가 쫓겨났다. 지금만 같았어도 모두 걸고 했을 텐데. 그게 중요한 일이란 걸 입으로만 나불거리고 만용만 부렸지, 실질적으로 지혜와 용기가 없었다.”

[S BOX] 포청천·산적두목·멧돼지 문희상, 숱한 별명 중 조조는 질색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에겐 유독 외모에 빗댄 별명이 많이 붙어 다닌다. 포청천·두꺼비·산적

두목·멧돼지…. 초선 시절엔 국정감사 스타로 떠오르면서 기자들 사이에 “겉은 장비, 속은 조조”로 불리기도 했다.

“별명은 늘 붙어 다녔다. 중·고교 땐 얼굴에 털이 많이 나서 털보라고도 불렸다. 산돼지나 산적 두목이란 별명도 있었는데 나의 어느 측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 볼 땐 산돼지에 가까운 것 같다. 저돌적이고 격정적이고 열정적이어서 산돼지처럼 밀어붙이는 게 있다.”

 문 위원장은 조조의
이미지를 싫어한다고 했다. 그는 “ 머리를 잘 쓴다고 해서 조조라고 붙인 게 지금까지 붙어 다니는데, 난 조조가 갖는 간웅의 이미지가 싫다. 이왕 머리가 좋다고 하면 제갈공명이라든지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지 않나.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출판기념회 때 와서 ‘내가 볼 때는 유비에 딱 맞다’고 말한 적이 있다. 덕이 많고 유연하다는 의미다. 고교 동창들은 나를 관우라고 부를 때가 있었다”고 했다.

 문 위원장은 포청천과 얽힌 에피소드(사진)도 들려줬다. “포청천 역을 맡았던 중국 배우 진차오췬(金超群)이 우리 민속씨름대회에 초청받았는데 자기와 닮은 나를 만나는 걸 조건으로 걸었다. 너무 똑같아서 만나는 순간 서로 웃음이 나왔다. 진차오췬은 키가 1m80㎝로 훤칠하다. 얼굴이 까만 건 분장 때문이고 실제 피부는 백옥같이 하얗다. 나보다 훨씬 잘생겼더라.”

글=이정민 정치·국제 에디터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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